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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배우’ 오달수, “늙어 죽을 때까지 관객들을 만날 거니 예쁘게 봐달라”…‘물론이죠’ 노원연기학원

노원본스타님 | 2016.03.28 16:39 | 조회 758




평범한 인쇄소 아르바이트생 오달수가 천만 배우가 되기 까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부딪혀서 깨지다 보면 분명히 된다”고 말하고 싶다는 오달수에게는 그런 말을 건낼 만한 충분한 이유와 자격이 있었다.
  
막걸리 한 잔과 함께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배우 오달수의 인터뷰. 24일 삼청동에 위치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한 카페에서 톱스타뉴스는 ‘천만 요정’ 오달수를 만났다.
  
Q. 주연으로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소감
 
오달수 : 얼떨떨하거나 그런건 없다. 평소 개봉할 때와 같은느낌이다. 기자 시사회할 때까지는 긴장도 되고 어떻게 나왔을까 하는 궁금함도 있었다. 잘 못나왔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많이 했다.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어제 본 영화에 대한 생각이 나더라. 편안하게 봤던 느낌이었다. 과하거나 신파같다는 것도 없고 편하게 보며 웃을 수 있는. 편안하게 잘 나온 영화같아서 기자 시사 끝나고 난 다음날 마음을 편하게 가지기로 했다.
  
Q. 현재는 영화 촬영 중에 있나
 
오달수 : 4월 말 쯤에 ‘마스터’라는 영화에 들어갈 거다. ‘터널’은 다 끝났다. 여름에 개봉할 거라고 하더라. 깐느에도 출품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심사에 통과해야 하지 않겠나. (웃음)


 

Q. 석민우 감독과 원래 알고지낸 사이 아닌가
 
오달수 : 올드보이 때 알고 지낸 사이다. 박찬욱 감독 영화에는 ‘아가씨’ 빼고 우리나라에서 촬영하는 건 다 참여했다. 
  
Q. 처음 연극을 시잘할 때는 어땠나
 
오달수 : 연극을 하려면 포스터가 있어야 하고 팜플렛도 있어야 한다.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 주로 배달을 많이 갔다. 연희단 거리패 극단이 있던 곳인데 연극을 쉬지 않고 하는 곳이기에 물량도 많고 포스터 한 장을 찍으면 2000장 정도 되는데 그런걸 자전거에 실어 배달했다. 배달을 자주 오니까 밥도 얻어 먹고 얻어 먹었으니 설거지도 해주고 했다. 퇴근길에 들려서 공연날에는 화장실 청소도 해줬다. 그렇게 하다가 ‘배역 하나 있는데 그냥 무대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돼. 무대에 앉아서 화투만 쳐’ 해서 시작했다. 그렇게 연극을 시작하게 됐다. 원래는 전혀 뜻이 없었다. 
  
원래는 디자인과를 갔었는데 졸업을 얼마 안 남기고 출석 미달로 잘렸다. 연극을 시작하고나니 학교를 갈 시간이 없더라. 학교 자체가 큰 의미가 없었다. 
  
무대에 가만히 2시간 정도 앉아있었는데 그게 힘들더라.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 같고. 첫 공을 마치고 ‘내가 미쳤지 한 달 동안 어떻게 하나. 끝나면 다시 안 한다’ 하는 생각도 했다. 한 달 공연을 끝내고 나니 해외 일정도 잡히고 자꾸만 일정들이 생기더라.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연출가들에게 ‘오구’는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다는 평도 받고 그랬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작품도 연습 하게 됐다.
  
Q. 서울엔 언제 올라온 건가
 
오달수 : 서울에 올라온 게 97년도 동숭아트센터에서 했던 ‘남자충동’이란 연극 때문이었다. 조광화 씨가 연출하신 작품인데 그 작품을 하기 위해 부산에서 완전히 짐을 싸서 올라왔다. 그 다음부턴 서울 시민이 됐다. (웃음)
   
Q. 그때는 연기에 대해 재미를 느낀건가
 
오달수 : 연기자의 길을 평생 갈 거라는 개념은 서있지 않았지만 연기가 훨씬 재밌다는 것은 느꼈다.
  


Q. 대배우가 될 것 같다 하고 눈여겨보고 있는 후배가 있는가
 
오달수 : 누구든 되지 않겠나 (웃음). 대배우라는 정의를 내리기도 참 힘들다.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돼봐야 그때 안다. 대배우라는 명찰을 안 달아주지 않나. 믿음이 가는 배우 연륜이 쌓여서 그 연륜이 묻어나는 배우. 저도 대배우라는 호칭을 얻는게 죽을 때까지 안 될 수도 있다. 그래도 배우라는 소리를 듣는 자체가 영광스럽다. 독일같은 곳에 가면 배우라는 말을 아무한테나 안 붙인다.
  
Q. 처음 ‘대배우’ 시나리오 받았을 때 어땠나
 
오달수 : 영화 감독님이 연극판의 에피소드같은 것들을 많이 리서치를 했다는 것에 놀랐다. 시나리오 자체가 주는 메세지가 좋았다. 새로운 꿈을 가진다 거나 옆에 가장 소중한 것이 가족이다라는 그런 메세지. 단순하면서도 깊은. 사실은 그저 그런 것들인데.
  
석민우 감독이 박쥐 때 ‘내가 입봉을 하게 되면 형님이 꼭 출연을 해주세요 어떤식으로든’이라고 해서 ‘그래서 알았어’라고 했었다. 뉘양스는 주연 줄 것같은 뉘양스였다. 언젠가는 감독으로 입봉할 테니까 입봉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진짜 시나리오를 들고 연락할 줄은 몰랐다.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감독 입장이라서 함부로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제 느낌에는 (꼭 출연해달라고 한 말이) 어떤 각오같은 걸 얘기하지 않았을까 한다. ‘나도 이제 입봉할 거니까’ 하는 자기 다짐. 그런 것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Q. 친근한 이미지. 대중들과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본인만의 비결
 
오달수 : 그게 뭔지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감독님들이 저를 캐스팅할 때 관객의 긴장을 풀어줄 수 있는, 악역을 하더라도 우스꽝스럽거나 연민이 가는 역할들을 많이 제안하셨다. 아마도 그런 것들 때문에 관객들이 저를 편안하게 생각하지 않나 한다.
  
연극을 할 초창기에는 ‘관객은 코뿔소다’ 라는 생각이 있었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코뿔소가 들이밀고 있는 뿔을 잡고 있는, 그래서 둘이 팽팽하게 맞서거나 혹은 뿔을 붙잡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하고. 연기를 잘 모를 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돌이켜보니 어떻게 보면 극의 긴장도나 그런 것을 위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내가 만나는건 사람이고 나를 위해서 하는 연기는 아니니 내 마음을 전달 해줘야지 않나. 관객에게 어떻게 하면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그렇게 개념이 바뀌다 보니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생각을 더 크게 가지게 됐다. 그런 면도 어떻게 보면 관객들하고 친해질 수 있는 큰 이유 같다. 마인드부터 달라지니까 친해지고 친근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Q. 장성필 역을 하며 공감이 많이 됐겠다
 
오달수 : 잘 이해할 수 있는 상황들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는데 한 가지 단점은 나 같으니까, 지나온 세월의 나 같이 느껴지니까 불쑥 불쑥 내가 자꾸 튀어나오더라. 그러면 안되는데. 하나의 캐릭터를 입어서 연기를 해야하는데 자꾸 장성필이 아니라 오달수가 나올 때가 있었다. 찍을 때 몇 번 불쑥 튀어나와서 깜짝 깜짝 놀랐었다. 
  
연기하기 더 불편했다. 차라리 무명 연극배우가 아니라 무명 미술가나 음악가 이런걸 했으면 훨신더 연기하기 좋았을 거 같다. 일관성있게 갈수 있었을 텐데.  연기가 뒤죽박죽이었다. 최선은 다했다. 할 만큼은 다 한것 같다.
  
Q. 배우가 배우를 연기하는게 흔하지 않은데
 
오달수 : 그런 영화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인물을 이해할 수 있어야혹은 공감할 수 있어야 연기가 진솔에 가깝게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장성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더라.
   
너무 스토커처럼 하는게 비인간적이지 않나 하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영화를 보니 일면으로는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 배우가 느끼는 딜레마가 살 수 있어서 조금 무리한 지점과 용납하기 힘든 지점이 있더라도 상대 배우에겐 꼭 필요한 부분들 같더라.
  
Q. 자전적 이야기같다는 말이 많다. 몇 퍼센트 정도가 그런 것 같냐
 
오달수 : 70%정도는 그런 것 같다. 수치로 말하는 좀 그렇지만 70% 가까이. 자전적이라기 보단 ‘이해를 하겠다’ 하는. 나도 그래봤으니까.
  
Q. 실제 연극판에서 영화판으로 넘어올 때 어땠나
 
오달수 : 연극판에서 영화판으로 연극 배우들이 막 넘어가기 시작하고 그럴 때였다. 임상수 감독님은 당시 그런 말씀도 하셨다. ‘그때 그사람들’을 찍으시고 난 뒤에 한 인터뷰에서 ‘대학로에서 고이 키워놓은 열매를 우리 영화인들이 똑똑 따먹어서 미안하다’는. 그때는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지는 단계였다.
  
Q. 어떤 계기로 넘어가게 됐는지
 
오달수 : 아는 지인을 통해. 그때 ‘인류 최초의 키스’라는 작품을 하고 있었다. 감옥 연극이었는데 그때 아는 후배가 ‘해적, 디스코왕 되다’에서 뻘줌남 역할을 찾는다고 소개해줘서 3일 정도 촬영을 했다. ‘여섯개의 시선’ 그때 박찬욱 감독님과 인연이 됐다.
  
Q. 영화 속 장성필은 영화를 찍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오달수 :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장성필을 보면 좀 처절하다. 상황은 이해하겠으나 장성필의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연극하는 사람들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거나 그렇게까지 해서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것 처럼 보여질까봐 겁이 나는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연극하는 사람들은 밝고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도. 그렇게 살아가시는 분들이다.
   
 Q. 장성필이 어떤 배우이라는 생각을 했나
 
오달수 : 진짜 연기 못하는 배우다. 어떻게 20년을 버텼는지 모르겠다.


  


Q. 조연으로 연기할 때와 주연으로 연기할 때의 차이점이 있었나
 
오달수 : 크게 없을 줄 알았는데 차이점이 많더라. 현장에서 감독님하고 제일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주연을 맡은 배우다. 내꺼 이외에 전체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고 이게 최종적으로 어떻게 나올까 하는 것까지 상상하며 해야 한다. 그러면서 매 씬 어떻게 변해가는지 섬세하게 얘기를 나누고 섬세하게 고치고 디테일하게 연기하고 해야 한다. 또 감독님이 현장을 장악하고 제일 앞에서 이끌어가지만 바로 옆에 같이 걸어가는게 주연배우가 해야 하는 몫이다. 조연할 때는 그런걸 크게 걱정 안했는데 해보니까 그런 것들이 좀 다르다면 다를까. 그런 짐을 짊어지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부담감도 많이 가지고. 
  
황정민이 만났을 때 이런 얘기를 하더라. ‘주연하는게 힘들지?’ 라고. 얄미웠다. 그때 진짜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힘들어 죽겠다. 어떻게 해야하니. 현장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얘기 좀 해줘’라고 했더니 ‘한 번 해봐 그냥’ 이라고 했다. 주연을 많이 하신 분들은 내공이 있으니까.
  
Q. 많은 남자배우분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가장 쿵짝이 잘 맞았던 배우가 있다면
 
오달수 : 다 잘 맞았다. 대부분 다 제 또래들이었다. 황정민, 제문이 다 같은 세대들이다. 김명민이 그나마 젊었다. 그래도 같은 세대니까. 나이가 들 만큼 들었으니까 다들 서로를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해줄까 이런 부분에 대한 쿵짝이 잘 맞는 거 같다. 이해의 폭이 서로 있어서 편하고 좋은거다. 아주 어린 친구였으면 서로 힘들었을 거 같다. 물론 잘 했겠지만. (웃음)
 
Q. 김명민이 “처음이자 마지막 까메오”라는 말을 했다
 
오달수 : ‘까메오 하루만 하면 되는데 어떻게 생각해’ 했더니 ‘해야지’라고 했다. ‘날짜 언제 괜찮아’ 해서 대답하고 말았다. 그때 알아서 의상 다 입고 왔다. 역시 준비된 배우다. 준비를 다 해서 왔더라. 그날 밥은 제가 샀다. 
  
박찬욱 감독이 원래 카메오 약속을 했었다. 타이틀이 뜨기 전에 보면 애 하나랑 엄마가 와서 화장실을 가는데 거기에 한 남자가 앉아 있기로 했었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님이 대본을 보시고는 석민우 감독님을 오히려 설득 시키더라. 아동극에 어른이 혼자 앉아있는건 웃기고 그게 특히나 박찬욱이면 카메오 출연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 같다고 해서 석민우 감독님이 접었던 것 같다. 100% 맞는 말이다. 그게 오히려 영화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씬이든 한번 나왔으면 좋긴 좋았을 거 같다.
  
Q. 엔딩 크레딧에 연극 때의 영상을 넣다고 했을 때 반대는 안 했나
 
오달수 : 감동을 받았다. 갑자기 오디션을 보는 장면들로 시작을 해서 연극의 한 장면들이 나오는데 자칫하면 분위기를 깰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극 속의 인물들이 오디션을 보는 장면이라 ‘뭐지?’ 이렇게 생각될 수도 있다. 성룡 영화가 끝나면 엔딩에 다치고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데 그런 것과는 또 다르게 감동적인 편집 같았다.
  
영상을 가지고 있진 않았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다. 연희단 거리패에서 구한 것 같다.
  
Q.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메세지
 
오달수 : 우리나라가 사실 청년들이 살아가기에 엄청나게 힘든 나라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청년들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20대 때 정말 모든 것들을 다 해보고 겪어보고 했으면 좋겠다. 생각할 나이에 많은 것들을 겪고 쌓아가야 되는 시점에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 살다보면 분명히 길을 열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기죽지 마시고 뭐든지 하고 싶은 것 막 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것 저것 막 부딪혀보고 깨져보고 기죽지 말고 의기소침하지 말고 그랬으면 좋겠다. 분명히 되니까.
 

Q. 배우로서 앞으로의 방향은
 
오달수 : 꾸준하게 사람들 만나는 것. 그 일을 꾸준하게 해 나갈 거다. 어떻게 작전을 짜든 어떻게 실천을 하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늙어 죽을 때 까지 관객들을 만날 거다. 그때까지 예쁘게 봐주시길 바란다.
  
Q. 오달수에게 연극이란
 
오달수 : 연극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관념적인데 죽기 10분 전에 말씀 드리겠다. ‘해보니 이거더라’ 하고 그때 말씀드리겠다.
  
마치 배우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그에게 ‘연기자’라는 옷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우연한 기회로 얻은 ‘해적, 디스코 왕 되다’의 뻘쭘남 역이라는 작은 단역으로 시작해 ‘여섯 개의 시선’,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7번방의 선물’, ‘변호인’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과 얼굴을 각인시킨 오달수.  
  
그는 긴 무명 시절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으며 “살다보면 분명히 길을 열린다”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또 묵묵히 한 길만을 걸어왔다. 
  
배우의 꿈을 꾸지 않았던 평범한 오달수가 ‘천만 요정’이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그의 많은 투자와 끈기가 없었다면 ‘대배우’의 장성필은 없지 않았을까.
 
“오달수 당신은 진정한 천만 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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